나는 생각이 없다
나는 지금을 산다
과거에 대한 분노는 희석된다
미래는 없다
나는 생각을 계속 한다
미래의 계획을 짜진 못하지만
생각을, 생각을 한다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에 대해서
이야기에 대해서
인물의 심리에 대해서
내가 누군가와 트로이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한들
절대로 깊게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왜냐면 사람들은 내가 답변하기 원하는 걸 물어주지 않으니까)
나는 가상 속의 누군가와...가상 속의 어떤 환경 안에서
트로이전쟁에 대해 말한다
까뮈가 일리아스를 좋아했을지가 궁금하다는 것을 물을 수 있는 어떤 노인
내 마음 속의 선생에 대해서
한참 망상 속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몽상 속에서... 몽상 속에서 계속해서.
나의 스승은 내가 글을 영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인 걸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당신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고 얘기했다
스승이 내게 돈을 주든 주지 않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아주 간절히 필요하다
아주 간절히...
영상. 인물. 살아 움직이는 것들
마치 시작과 끝이 둥그렇게 맺어진 구의 형태처럼, 글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그 안에 생명을 가득 모아놓고 우글거리는 고치이고 굴절되는 빛
그러나 흘러가지는 않는 물은 아닌
빛나는 생명력
평생을 노력해도 내가 쓸 수 있는것은 코끼리가 아닌 코끼리의 발등이나 발목의 주름 갯수 정도
나는 영매처럼 그걸 받아들여 백지를 채우는데
스승은 당신에게 보이는 모든 걸 한번에 이야기하려 하지 말라고 했다
빛의 방향
빛의 각도.
어디에서 어떻게 들어오는지...
음악은 어떻게 흐르는지
이 자는 어떤 악기를 닮았는지
나의 할머니는 나를 작가로 키우기 위해서 더 많은 곳을 돌아다녔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상관이 되지 않는다
배경에, 그러니까 장소에 어떤 날씨와 어떤 소품을 놓는지는 나의 몫이니까
나는 가지 않은 거리를 마땅히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은
그러니까...음악을 더 많이 들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직접.
고치 안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가장 닮은 건 현악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조증삽화 기간이기 때문에 ...
나는 이 일을 알리지 않고 최대한 많은 것을 지금 이 때에 하고 버릇을 들여둬야 한다
그래야 최대한 조용히, 우울이 극심해질 때를 넘길 수 있다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