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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

이호연-12 2025. 2. 27. 18:43

지난 가을에 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집에 갔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지 글을 쓰는 오늘 기준 6년이 된다. 그와 나는 거의 만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에는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고, 이제는 그가 자신의 삶을 사느라 바쁘다.

내가 가진 감정을 단순히 용서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가정이 있는 상태로 동시에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녔던 그를 생각하면 나는 늘 그가 새로운 여자를 데려와 내게 새엄마를 만들어 버릴 거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중학생 시절 나는 아버지가 새엄마를 데려와 소개하거든 어떻게 해서 어떻게 움직인다는 '새엄마 등장시 행동강령'을 만들어 매일 상상하며 집에 들어섰다. 첫째, 새엄마와 인사하기 전 내 손에 침을 뱉는다. 둘째. 침 묻은 손으로 그녀와 악수한다. 셋째. 부엌칼을 빼든다. 넷째. 그녀를 찔러 죽인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동성 연인이 아버지를 죽이는 소설을 썼을 때 교수는 내게 진부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하나도 진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죽이는 일과 가상의 새엄마를 죽이는 일은 나에게는 늘 짜릿하고 새로웠다.

새엄마라는 존재는 마치 유령 같았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수많은 '그녀들'은 가끔 어머니의 휴대폰에 적힌 '씨발년' 같은 전화번호를 통해서만 내게 체감되었다. 마지막으로 훔쳐 본 어머니의 일기장 첫 문장에는 '남편의 여자'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던 게 기억난다. 유령, 걸어다니는 그림자처럼, 새엄마의 존재는 늘 내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것은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그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아버지가 나와 밥 먹자 할 때마다 거절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아버지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랍시고 누군갈 소개하면 나는 그녀와 침을 뱉은 손으로 악수해야 했다. 그런 걸 생각하다 보면 귀찮았고 얼마 뒤 편두통이 도졌다. 그런데 가을에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아버지는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집에서 함께 살 때보다 훨씬 안정 되어 보였다.

아버지의 개는 내가 본 개 중 가장 똑똑하고 눈이 깊었다. '영물'이라는 단어가 자연히 생각날 만큼 점잖은 놈이었다. 낑낑대거나 짖지 않았으며 내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개가 내 동생이라고 했다. 개는 내가 자신을 어려워하는 듯하자 내게서 멀리 떨어져 천천히 엎드려 앉았다. 내가 귀 밑을 한참 긁어주다 껴안았더니 제 몸을 뱀처럼 휘면서 내 팔에 딱 맞게 몸을 맞춰 왔다. 아버지는 개가 아주 똑똑해서 자기와 닮은 인간에게는 금세 마음을 열지만 다른 이들에겐 털을 빳빳이 세우며 경계한다 했고 좀처럼 짖지 않는다 했다. 실제로 그랬다. 나는 개를 오래 키웠지만 개를 싫어하는데 개가 짖을 때마다 아버지가 개를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사는 집은 자신의 사촌 형제가 살던 집이었다. 냉온방이 제대로 되지 않지만 간절기엔 살기 괜찮아 보이는, 넓고 깨끗한 집이었다. 몇십 만원 어치의 로또 복권이 쌓여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집에 가거든 청소나 설거지를 해야 하나 했지만 그 모든 일들은 그가 직접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멍하게, 아버지의 개를 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던 시절보다 놀랍도록 안정된 그를 보았다.

그러나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일깨운 것은 냉장고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이었다. 나는 그 종이가 여자 글씨로 적혀 있단 걸 눈치챘기에 들여다 봤다. 아마 나의 큰아빠라는 아버지의 사촌형제의 딸이 써서 준 듯한 편지였는데, 어쩌면 아버지의 새 딸일지도 모른다. 대충 내용은 이번에 장학금을 타게 되어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고 항상 식사를 잘 챙기고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병신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비록 휴학으로 대학을 10년동안 다녔으나 나는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고 이 년이 누구든 이 년보단 나은 대학에 다니고 있을 것이었다. 친가 버러지들 중 나보다 나은 대학에 간 새끼 이야긴 들어본 적 없었으니까 그럴 것이었다. 그깟 학교에서 고작 장학금 하나 받았다고 제 아비에게 또는 제 친아비도 아닌 놈에게 애정어린 포스트잇을 써준다니 병신같다고, 그게 뭐라고 대단한 체 하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 노란 포스트잇에 적힌 동글동글하고 친근한 글씨가 잊히지 않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건 누가 준 거냐고 물을 수 없고, 아버지에게 새 여자가 생겼느냐고, 그래서 딸이 새로 생긴 거냐고, 당신이 나에게 지은 죄가 있듯 당신은 마땅히 나의 증오를 받아야만 하며 다른 무엇은 상관 없으나 나는 당신의 새 아내와 당신의 새 자식이 유령처럼 내 인생 속을 무한히 걸어다니고 있어 내 삶은 어둡고, 춥고, 칙칙하고 시커멓다고, 내 똑똑한 어머니와 무책임한 당신의 혼전임신으로 두 사람을 불행한 결혼에 엮은 내 존재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느냐고, 나는 늘 전액장학금을 받았고 이번에도 그러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고, 당신이 가질 어떠한 자식보다도 더 글을 잘 쓰고, 더 공부를 잘 하고, 당신이 학원에 보내지 않았지만 인서울 대학에 당당히 잘 붙었노라고, 사람들은 내가 발표할 때 나에게 감탄하고 내가 글을 쓰면 나를 혐오하던 사람도 10여분 정돈 사랑에 빠진 눈으로 나를 쳐다볼 수 있으며, 내가 쓴 글에 대해 교수들은 칭찬을 멈추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당신으로 인해 어머니는 내게 화풀이를 했다고, 당신은 내가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생겼을 때 매일 검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나는 울었지만 실은 당신이 내일도 나한테 짧은 손톱에 대해 혼내주길 기다렸다고, 그런데 당신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항상 당신을 기다려왔고 나는 늘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당신에게 자랑하지 않았는데, 내가 바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오직 따뜻한 집안을, 당신과 농담하며 같은 방구석에서 잘 지내기를 바랐다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에게는 새 딸이 생겨서 좋겠다고,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나는 그 편지의 주인이 당신의 딸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이런 글을 아무리 써보아도, 내가 이딴 글을 세상에 싸지르며 얼마나 울어도 당신은 평생 모르리라는 것을 안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내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그래서 비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