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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의 일기
    카테고리 없음 2024. 8. 2. 02:35

     

    지난 달 도서관에 갔다가 평소 좋아하던 작가의 유고집을 빌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 읽어내지는 못했다. 작가의 부고 소식은 어디에선가 우연히 들어 알고 있었다. 뉴스 기사를 봤나?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교 시절부터 그 작가를 좋아했었고 그의 소설집을 많이 보았다. 내가 읽은 것 중 가장 잘 쓴 단편 소설, 을 생각하면 그 작가의 작품도 몇 편 떠오른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다. 문창과를 지망했기 때문에 소설가 선생님께 지도받았는데 선생은 그 작가에 대해 한강뷰에 살고 교수의 배우자인 부유한 부르주아, 라는 식으로 말했다. 한강뷰가 보이는 집에서 글을 쓰며 전업주부로 살면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본다는 선생님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러나 유고집 마지막에 적힌 작가의 배우자가 남긴 글을 보니 작가의 삶은 전혀 딴판이었다.

    작가의 배우자는 작가가 그리 성공하지 못한 작가라고 말했다. 소식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대중적이지 않은 작가. 그런 뉘앙스였을 것이다. 작가는 늘 내 마음 속에서 어느 순간 이후 최고의 소설가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피로 쓴 것 같은 마음 아픈 추도문을 읽고 나서는 과연 내가 작가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거의 접는 단계에 이르렀다.

    작가로 성공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에 상업, 순수문학? 이렇게 물었다. 늘 아는 척을 하는 나였으니 아마 친구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순수문학이 뭔지도 몰랐다는 것을. 왠지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돈은 못 벌지만 순문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돈을 못 버는 건 어쩌면 나처럼 사람을 위해 글쓰는 법을 모르는 작가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는 왜 사람을 위해 글을 쓰지 않느냐, 라고 한다면 그러지 못하는 거다. 아마 그리 진심도 아닐 것이다. 실은 글쓰기에 진심이었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간은 벽을 뛰어넘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끝간 데 없는 하늘 위에 둥둥 떠서, 발을 딛지 못하는 기분이다. 한 번 날개를 펼치면 십여 년은 족히 날아야만 하는 새처럼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넋나간 몸뚱이에 계속해 연료를 주입하고 있다. 그게 다다. 하지만 소설을 쓰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이 될 것인가? 나의 이십대 시절은 지났다. 나는 그때에... 그때 뭐라도 했어야 했다.

    나는 배움에 나이는 없다는 말을 믿는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나는 산유국에서 태어나 유학온 남자가 아니고... 이런 것을 생각하니까 웃기다. 나도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을 내다버리고 파리에 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미래의 나는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존재여서 지금 생각하면 기계적으로라도 웃게 된다.

    어쩌면 글을 쓸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모자란 게 아니라 자신이 없는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 2년 전 출간한 작품의 단행본 출간을 위해 퇴고하는 과정을 겪었다. 나는 아마도 이 작품이 평생 벌 돈보다 지금 쓰고 있는 인력 비용이 더 많이 들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야구 식으로 표현하자면 나의 war는 음수일 것이다. 모든 것이 죄스럽다. 원망과 자살을 염불처럼 외던 시절은 지났고 나는 이제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자주 생각한다. 소설가 선생님은 왜 그렇게도 나를 미워했는지. 왜 나를 싫어했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내가 했던 말이 얼마나 무식하고 어떤 게 무례했는지. 왜 나는 상장과 익명 아래에서만, 내 존재가 없어야만 사람들의 자랑이었는지. 언제나 나는 관념만으로 존재하는 사람이었고 내게 있어 나의 실체는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내가 가족을 버릴 수는 있을지언정 자신을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감정은 거의 없이 꾸준히, 생각한다. 과거에 실수했던 것을 떠올리며 입으로 쉬지 않고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다. 나의 실패와 가능성 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나는 언어적 지능보다 30점 정도 낮았던 동작성 지능과, 내 아이큐 92라는 두 글자를 떠올린다. 당시 지능검사를 감독하던 사람이 나를 비만한 체형에 손톱을 뜯는 불안정해 보이는 여자라고 기록했던 것을 떠올린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거기에 내가 있다. 그 종이를 버린지 오래 되었고, 정신과에 가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

    이제는 알고 있다. 소설가라는 족속 중에 선생에 어울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딸을 입양해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어쩌면 글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고 나는 대단하지 않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육신을 벗어내는 날은 언젠가 올 것인가. 그때가 되면 나는 비로소, 내게 연락해 맡겨둔 것처럼 내 사랑을 가져가는 아버지를 길가의 돌이나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처럼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을까.

    혈육과 사랑에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모르겠다. 내 삶이 가닥 없이 밑바닥에 여전히 기고 있는 지금에도 누군가는 나를 미워하고 있을까. 나는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냥 선생은 선생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고 개년이었다. 그렇게만 짧게 생각하고 털어뒀다. 개좆같은 병신 정유가 지나고 무술에 이르렀다. 곧 엄마 생일이다.

     

    이 일기의 개인 신상은 조작하여 가상으로 적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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