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돌아온 지 두 학기가 지났다.
매일 나는 관성에 대해 생각한다.
대학교 4년은 제식 행위에 익숙해지는 기간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실제로, 내가 사회의 부적응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에 대학교 졸업장만큼 얻기 쉬운 서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있다.
매일 닳아가고 있다.
대학에 돌아오기로 마음먹고 지난 1년간 단 하루도 행복했던 적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기에 있다. 한 번 달아났던 곳에 다시.
도망칠 줄 모르는, 매맞는 충실한 개처럼.
거의 매일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징그러워하고 무시하는지 생각한다. 지하철 옆자리의 내 옆만 빈 칸에 대해 생각한다.
지난 해 7월 이후 단약했던 우울증 약을 다시 먹고 있으며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다.
수면제를 먹고 팔다리가 무거워지면 그제야 조금 안도감이 든다.
벌판에 불을 지르고 싶다.
들불처럼 살고 싶었다. 남은 것은 부자유와, 잠시 얻어낸 자유 속에서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타인의 작품을 부러워하기만 하는 내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있다.
나는 이제 자살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고 수업도 빠지지 않는다.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오랜 시간 나를 겁박한 그 사람에게서 더 빨리 벗어났다면 나는 과거에 선택했던 대로 불교를 더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오랜세월 꿈꿔왔던대로 프랑스에 가볼 수 있었을 것이다. 수술을 마친 후 집을 나왔다면, 사장님의 말을 더 잘 들었다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웹소설을 계속 썼다면, 내가 일이 이해가지 않아도 일자리에 계속 붙어 있었다면, 내가 좀 더 멀쩡하게 태어났다면. 자폐도 adhd도 없었다면.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미래는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생은 거대한 고통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붓다의 말은 얼마나 통렬한 것인가. 마치 꼬챙이처럼 삶이라는 원을 뚫어버리는 그 말이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기에 있다. 삶의 많은 것 속에 이유가 있겠으나 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남은 것은 밀물 뿐이다. 나는 전선 위에 선 제비이며 밀물 한가운데서 조개를 줍고 싶은 미물이다. 어리석으며, 어리석은 이유로 번뇌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글 안에서 나는 나를 이해하며 연민하고 경멸하나, 끝내 현실로 돌아와 내게 친절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연락해야만 할 때는, 결코 삶에 자유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