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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 놀기 천재
    카테고리 없음 2025. 1. 14. 22:24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종종 또래 아이들이 "넌 왜 이렇게 혼자 놀아?" 라고 했던 것이 기억 난다.

    과연 그랬을까? 실제로 나는 그랬다.

    친구가 있으면 친구랑 놀았겠지만 친구가 없었던 것도 있었고, 진짜로 혼자 노는 데에서 문제를 못 느꼈기 때문도 있었다.

    그런 어린 내가 꽤나 몰두했던 일이 있으니 바로 그림 그리기였다.

    하지만 매 해 반이 바뀔 때마다 나보다 그림 잘 그리는 친구를 만나기를 몇 년

    이제는 나와 코드가 맞아 보이는 친구가 그림 그리기가 취미라 할 때면 '나보다 못 그리겠지 제발' 이라고 생각하기를 넘어서 '당연히 나보단 잘 그리겠지'라고 생각할 때가 되어서야 나는 그림 그리기 대신 다른 것을 택한다

    그것은 글쓰기였다

    물론 나에게 있어 글 쓰기가 그림 그리기보다 차선택은 아니었다

    사람은 대개 자기가 자연스럽게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나에게 있어 글쓰기가 그랬던 것이다. 나는 여태 살면서도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며(자의식 안에서는 어쨌든 이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니 축복받은 인간인 셈이다) 아름다운 명작을 보면 자연스레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것과 닮아가려고 노력하면서 꽤 빠른 속도로 접목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카피와 흡수의 달인이다). 나는 또래 중에서도 항상 꼭대기에 앉아 남을 내려다 보았기 때문에(현실이 어땠든간에) 글쓰기란 역시 혼자 놀기이며 자신을 넘어서는 것 이외에는 매우 무료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쨌든 독자를 원치 않는 글쓰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러분은 남의 글에 관심이 많은가? 사실 나는 가족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 말고 남의 글쓰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작가 집단과 교류하기가 매우 쉽지 않다. 혼자 구석에 처박혀 글을 쓸 수 있는데 왜 삶을 심심하다고 느끼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이무렵 생각나는 것은 대학 입시의 면접 문항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작가였다면 어떤 방식으로 글을 썼을 것인가? 일본어로 출간할 것인가 한글로 적을 것인가? 라는 문항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히 답이 정해진 노땅스러운 문항이란 생각이 드는데 당시의 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글을 쓰고 싶다는 대전제 아래서 (남의 걸 보고 흉내낸 거였음) 이야기하다가 문득 교수의 논리에논파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냥 웃으면서 우리말로 글을 써서 내 친구들이나 가족들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글을 보여준 다음 벽장에 넣고 걸어잠그고 나서 걍 죽어버리면

    운이 좋다면 누군가 세상에 알려줄 것이고 읽지 않아도 상관 없다고 이야기했다

    교수들은 어째서인지 이 대답이 감명깊었던 모양으로 이후에는 좋아하는 작가를 묻기에 십여명을 연달아 대답하고 수다를 떨다 나온 기억이 난다

    몇년 뒤 나는 그 대학에서 웹소설을 배우게 되는데 은사께서는 그런 내게 '평생 무료 연재만 하다가 그만 둘 거예요?' 라고 물었다

    내게 있어 그 말이 은근 충격적이고 자존심이 상했던 것은 첫째로 평생 무료 연재만 하면 안된다는 것인가? 와 둘째로 그 말에서 느껴진 미묘한 도발 때문이었던 것 같다

    평생 무료연재만 하다가 글 그만 쓸 거냐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료연재? 같은 것을 할 것 같은가? 내가 글을 그만 쓸 무렵에 누군가가 내 글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돈을 주면...글을 써야 하는가?

    최근에는 어쨌든 글을 그만 쓰게 된다면 목숨이 끊어져서라기보단 눈이 멀어서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다

    나는 평생 내 글의 통제권을 놓고 싶지 않아서 회지도 안 내던 사람인데 사람들이 종종 독자가 없는 글쓰기를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식으로 말하면 힘겨워진다 그러니까...저는 자폐가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나... 그렇다면 자폐인의 글쓰기는 자기안에 갇힌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또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그 말이 꽤 임팩트가 세긴 했던 모양이다 아직도 나는 평생 무료연재만 하다 그만둘거예요? 를 기억해본다

    그리고 뭐라고 반박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은사께서는 나에 관련하여 나중엔 어차피 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어딘가에서 평생 글을 쓰며 살아갈 사람이기에 걱정치 않는다 라고 말했으므로...

    하지만 어쨌든간에 글쓰기는 혼자놀기의 최고로 즐거운 방법이며 나는 나의 불안과 생각을 잠재우기 위해 글을 쓴다

    최근에는 adhd 진단을 받고 제정신이 되려고 약도 먹고 하고 있는데 메스껍고 세상이 별로 재미가 없다

    어쩌면 나는 우울한걸지도 모른다

    근데 하루이틀인가? 잘 모르겠다

    올해는 계약 사기를 당했던지 꼬박 4년정도가 되는 것 같고 나는 출판사를 세워서 그냥 내 글을 툭툭 출판할 생각도 해봤다

    어쨌든 내 목적은 남이 보기에 쓰레기 같은 글을 세상에 계속 싸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죽은 뒤 ai모델 중 하나가 되어 내 글은 우주에 퍼뜨려지게 되겠지...

    그것도 아니면 뭐 대충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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